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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충렬왕 시대 - 합단의 침입 2썰

드디어 합단 적이 침입해 왔다.

나무관세음보살...

저는 그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화주에 있을 때였습니다. 합단군 수만 명이 들이닥쳤죠.

화주와 등주 두 고을은 어찌해보지도 못하고 함락되었습니다.

두 고을이 함락되자 참담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합단 적은 먼 길을 오느라 먹을 양식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여 먹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또한 부녀자들을 윤간하였고 인간을 포를 떠서 먹었습니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당시 합단 적이 화주와 등주를 함락시켰을 때 성상께서는 어쩔 수 없이 송분에게 왕경을 맡기고 강화도로 피난하였는데 얼마되지 않아 송분이 왕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들어왔고 이어서 서경유수 정인경도 서경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조정의 대신들이 전쟁을 피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허공 나으리 전쟁이 일어나면 고통 받는 것은 백성입니다. 앞장서서 싸움을 하는 것도 조정의 대신들이 아닌 말단 관직과 백성들의 몫이지요. 봄 정월에 철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허공은 철령에서 있었던 일은 대충 알기에 부끄러움에 매골승을 똑바로 바로 볼 수 없었다.

봄 정월에 합단의 군사가 철령에 이르렀지요. 철령은 길이 좁아 겨우 한사람만이 통과 할 수 있는 천혜의 요세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키던 방수만호 정수기가 합단적의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에 놀라 그곳 철령을 버리고 도망쳤지요. 합단적은 춤을 추며 철령을 통과하였고 정수기가 버리고 간 양식을 먹고 전진하여 교주도로 들어와 양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지요. 이렇게 어리석은 장수가 또 있겠습니까.”

맹골승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이렇게 정부의 중신들이 전쟁을 피해 도망갈 때 하급무사와 백성들은 자기 주변에서 고통받는 이웃을 생각했고 마지막 남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합단군이 원주 치악성에 주둔하며 소와 말을 약탈할 때 이를 보다 못한 하급무사 원충갑은 6명으로 결사대를 결성하였지요. 합단군을 추적하여 소와 말을 약탈한 대가로 말 8필을 빼앗아 돌아왔지요.

또 한 번은 합단군이 운반하는 녹봉미를 빼앗자 원충갑 결사대는 7명으로 적속에 뛰어들어 적의 목을 베고 말 25필을 빼앗았습니다.

그러자 합단군은 전면전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기세를 올려 깃발과 북을 치며 한 사람을 보내 항복서한을 보내왔는데 이 때 원충갑이 나아가 편지를 가져온 자의 목을 베어 던져버렸지요. 적은 원충갑의 기개에 눌려 물러갔지만 더 큰 전쟁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적이 다시 전열을 정비해 포로 두 명을 보내 원충갑을 유인하자 원충갑은 이들의 목을 가차 없이 베자 적은 북과 함성을 울리며 화살을 쏘았는데 하늘에서 화살비가 내렸습니다.

이렇게 성이 함락직전까지 놓였을 때 원충갑이 돌연 동쪽 봉우리에서 나타나 적을 베니 적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강백송이 종 도니를 포함하여 30여명과 함께 싸웠고 고을의 아전과 공부하는 유생들 100여명이 합세하여 서쪽 봉우리에서 공격하니 조신은 북채를 잡고 독려하였습니다. 날아온 화살이 조신의 팔뚝을 관통하였지만 조신은 아픈 기색 없이 북채를 휘둘러 북소리가 온 천지를 뒤덮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합단적은 두려움에 퇴각하기 시작하였고 고을의 군병들이 합세하여 합단군 거의 절반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허공은 당시의 참상이 눈에 밟히는지 눈시울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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