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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고려 의종 - 문극겸의 상소

시간이 흘러가자 왕의 횡포는 더욱 심해졌어.
1162년 6월 왕은 간관들에게 최광균의 고신에 서명하지 않는다고 질책을 했지.
낭관들은 왕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조아리고 연신 "예,예" 만을 외칠뿐 누구하나 반대하는 이가 없었단다.
최광균이 누군데 왕이 고신을 하라하고 간신들은 쩔쩔맬까?
당시 왕의 총애를 받던 무비가 있었어.
최광균이 그의 사위가 되자 느닷없이 그를 식목도감 녹사에 임명한거야.
식목도감 녹사는 8품직으로 결코 낮은직위가 아니었지.
이로인해 사대부들이 이를 갈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어.
이렇게 왕을 견제하는 기능이 사라지자 그들을 향해 조롱하는 말들이 세상에 퍼졌지.
<말하지 말라는 것은 사간이요, 말없는 것이 정언이요, 말더듬는 것이 간의다. 유유히 무엇을 논했던고>

9월에는 왕의 총애를 받기위한 궁녀의 미도사건이 발생했어.
미도란 남편의 사랑을 받기위한 방술의 일종이야.
궁녀가 닭을 그린 그림을 몰래 왕의 담요 속에 놓아두었는데 이 일이 발각된거야.
그러자 주부동정 김의보가 내시 윤지원과 공모하여 왕을 저주하려 하였다고 무고를 한거야.
겁이 많은 왕은 이 말을 믿고 김의보의 목을 베었고 윤지원은 무인도로 귀양 보내버렸어.
왕을 견제하는 대간들을 왕의 사람들로 채워 그 기능이 사라지자 왕은 국정을 뒤로한 채 그를 따르는 간악한 무리들과 향락만 일삼은 거야.

1163년 8월, 좌정언 문극겸이 비장한 각오로 합문에 엎드려 소를 올렸어.
환관 백선연은 상벌의 권력을 함부로 행하고 궁인 무비와 추행이 있었습니다.
술객 영의는 바르지 못한 도를 가지고 백순궁과 관북궁 두 궁을 설치하며 위에 아첨하여 사사로이 재화를 저축하고 재를 올리는데 비용을 지출하여 죄가 큽니다.
또한 백선연과 더불어 사무를 관장한답시고 양계의 병마사와 5도의 안찰사가 대궐을 하직하고 떠나는 날 두 궁에서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고 전송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방물을 바치게 하였고 그 물품의 다소에 따라 실적에 따른 고과로 삼으니 그들은 어쩔수 없이 가가호호 추렴하기에 이르니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옵니다.
좌상시 최유칭은 중요한 직위에 있어 권세가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탐욕이  끝이 없어 수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자기를 따르지 않는 자는 반드시 중상모략하였습니다.
청컨데 백선연과 무비는 목베고 영의는 내쫓아 말을 먹이는 하인으로 삼으시고 최유칭은 파직하시옵소서.

왕이 상소문에서 궁문의 추문을 언급하자 몹시 화가나 상소문을 불살라 버렸지.
최유칭이 대궐로 와서 문극겸과 대질하길 청했어.
문극겸의 말은 하나하나 절실함과 간절함이 베어있었지만 결국 황주판관으로 좌천되는 것으로 왕은 결론을 내렸어.
이전에 문극겸이 소를 작성할 적에 간의 이지심, 급사 박육화, 기거주, 윤인첨 등이 있었지만 함께 서명하지 않았고 문극겸이 좌천되는 것을 보고도 태연하게 직무를 보고 있었어.
당시 세상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조롱하였으니 무신정권이 들어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문극겸이 누구냐고?
아마 조금 생소한 인물일거야.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지.
세상이 혼돈에 빠지면 진리를 따라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는 항상 있어왔어.
문극겸은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알지. 그의 조상이야.
이후 무신의 난이 일어나 문신들이 화를 당할 때 많은 문신들을 구했고 심지어 무신들의 고사에 자문역활까지 하였어.
그 덕분에 최초로 문무겸직을 하였단다.
뿐만아니라 이의방의 아우인 린에게 딸을 출가시킴으로써 계사의 난때 화를 면하게 되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알지.
그가 바로 린과 문극겸의 딸의 6대손이야.
이렇게 역사는 우리와 동떨어진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바로 우리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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