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감후 유원도가 백주 지금의 황해도 백천에 궁궐을 짓자고 아뢰었지.
왕은 평장사 최윤의를 보내 풍수를 알아보게 하고 다음달에 바로 최윤의, 지주사 이원응, 내시 박회준 등을 파견하여 별궁을 창건케 했어.
그런데 박회준은 서해도에서 인부를 징집해다가 밤낮으로 공사를 독려하니 준공은 빨랐지만 백성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단다.
준공된 대궐의 이름은 중흥궐이고 전은 대화전이야.
천문·역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이곳의 형세를 보고 서남쪽의 뜨내기 호랑이가 머리를 들고 엄습해 오는 형세라 위태롭고 망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지.
왕은 중흥궐이 준공되자 정함을 다시 권지각문지후로 임명했어.
정함의 고신에 서명하지 않은 전중시어사 김돈중을 호부원외랑으로 좌천시키고 말이야.
모든 백성들이 정함의 권세에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어.
정함이 왕에게 성찬을 올리고 의대를 바쳤고 그옆에 최윤의와 이원응이 같이 왕을 모셨는데 풍악소리가 대궐 밖까지 들리는 등 그 권세가 하늘을 찔렀지.
환관의 권세가 이 정도이니 나라 꼴이 뭐가 되겠어.
또 1162년에는 환관 백선연이 장적에서 삭제되는 사건이 있었지.
백선연이 누구냐구.
백선연은 본래 남경의 관노였는데 왕이 남경에 행차했을 때 왕의 마음에 들어 왕이 양자라고 부르던 자야.
그는 왕을 믿고 왕광취와 더불어 왕의 침실에 드나들었고 궁인 무비와 친밀했다는 추문이 있었어.
그런데 어사대에서 내시 김헌황이 환관 백선연을 아첨하여 섬기는 것을 탄핵하여 아뢰자 장적에서 삭제되었던 거지.
이렇게 환관들의 횡포는 심했어.
간관이 합문 밖에 엎드려 별궁에 공납하는 것을 폐지하기를 소를 올려 청하였는데 왕은 들은 척도 안했지.
왕은 백성의 삶보다는 음양가의 비결과 축원하는 설을 너무 믿다보니 매일매일 행재소에서 승려와 도사 수백명을 모아놓고 재를 올리는 것을 좋아했어.
그러다보니 제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났지.
결국 내탕의 저축이 고갈되었고 왕은 많은 개인 집을 빼앗아 별궁이라 칭하고 재물을 빼앗았으며 그 공사를 환관에게 감독케 하고 이를 빙자하여 사리를 영위하였단다.
당시에는 한재와 전염병이 돌아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길에는 시체가 즐비하였는데 말이야.
백성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이렇게 사치가 심하니 권력의 중심에는 환관과 내시들만 득실거렸어.
또한 주연의 횟수가 늘어나고 왕의 궁궐밖 출입이 많다보니 무신의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문신과 환관들이 무인들을 무시하니 후에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아니 왕이 환관과 내시들과 합작해 총신정치를 펼친 결과라고 보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백성은 안중에도 없는 왕이었으니.....
왕은 평장사 최윤의를 보내 풍수를 알아보게 하고 다음달에 바로 최윤의, 지주사 이원응, 내시 박회준 등을 파견하여 별궁을 창건케 했어.
그런데 박회준은 서해도에서 인부를 징집해다가 밤낮으로 공사를 독려하니 준공은 빨랐지만 백성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단다.
준공된 대궐의 이름은 중흥궐이고 전은 대화전이야.
천문·역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이곳의 형세를 보고 서남쪽의 뜨내기 호랑이가 머리를 들고 엄습해 오는 형세라 위태롭고 망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지.
왕은 중흥궐이 준공되자 정함을 다시 권지각문지후로 임명했어.
정함의 고신에 서명하지 않은 전중시어사 김돈중을 호부원외랑으로 좌천시키고 말이야.
모든 백성들이 정함의 권세에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어.
정함이 왕에게 성찬을 올리고 의대를 바쳤고 그옆에 최윤의와 이원응이 같이 왕을 모셨는데 풍악소리가 대궐 밖까지 들리는 등 그 권세가 하늘을 찔렀지.
환관의 권세가 이 정도이니 나라 꼴이 뭐가 되겠어.
또 1162년에는 환관 백선연이 장적에서 삭제되는 사건이 있었지.
백선연이 누구냐구.
백선연은 본래 남경의 관노였는데 왕이 남경에 행차했을 때 왕의 마음에 들어 왕이 양자라고 부르던 자야.
그는 왕을 믿고 왕광취와 더불어 왕의 침실에 드나들었고 궁인 무비와 친밀했다는 추문이 있었어.
그런데 어사대에서 내시 김헌황이 환관 백선연을 아첨하여 섬기는 것을 탄핵하여 아뢰자 장적에서 삭제되었던 거지.
이렇게 환관들의 횡포는 심했어.
간관이 합문 밖에 엎드려 별궁에 공납하는 것을 폐지하기를 소를 올려 청하였는데 왕은 들은 척도 안했지.
왕은 백성의 삶보다는 음양가의 비결과 축원하는 설을 너무 믿다보니 매일매일 행재소에서 승려와 도사 수백명을 모아놓고 재를 올리는 것을 좋아했어.
그러다보니 제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났지.
결국 내탕의 저축이 고갈되었고 왕은 많은 개인 집을 빼앗아 별궁이라 칭하고 재물을 빼앗았으며 그 공사를 환관에게 감독케 하고 이를 빙자하여 사리를 영위하였단다.
당시에는 한재와 전염병이 돌아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길에는 시체가 즐비하였는데 말이야.
백성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이렇게 사치가 심하니 권력의 중심에는 환관과 내시들만 득실거렸어.
또한 주연의 횟수가 늘어나고 왕의 궁궐밖 출입이 많다보니 무신의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문신과 환관들이 무인들을 무시하니 후에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아니 왕이 환관과 내시들과 합작해 총신정치를 펼친 결과라고 보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백성은 안중에도 없는 왕이었으니.....
'중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 의종 - 변경에서 생긴일 (0) | 2019.04.24 |
---|---|
고려 의종 - 문극겸의 상소 (0) | 2019.04.24 |
고려의종 - 이공승의 기개 (0) | 2019.04.14 |
고려 의종 - 고려 인사청문회 (0) | 2019.04.12 |
고려 의종 - 수덕궁 (0) | 2019.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