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함이 조정에 참여하여 권력을 휘두르며 국법을 어지럽히고 있을즈음 1157년 12월 또다시 왕명이 떨어졌어.
정함의 집을 경명궁으로 삼겠다는 명이었지.
정함의 집은 대궐에서 동남쪽으로 30보 떨어진 곳에 있었단다.
규모를 보면 크고 작은 행랑의 칸수가 무려 2백여칸에 이르고 누각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으며 장식들이 너무 찬란하여 눈이 부실 정도였단다.
규모나 화려함으로 보면 궁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지.
당시 음양가들은 이 터를 두고 개가 머리를 들고 주인을 짓는 형상이니 임금이 임어하는 것은 좋치못하다고 했지.
그러나 왕은 개의치 않았단다.
그리고 그 다음해 6월 왕은 우승선 지어사대사 이공승, 중승 송청윤, 시어사 오충정 등을 불러 말하였어.
"정함은 과인이 포대기에 쌓여 있을 시절부터 정성껏 보호하여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에 권지각문지후를 제수하여 그 공로를 갚으려 했더니 이미 3년이 지나도록 경들이 고신에 서명하지 않으니 이는 실로 신하로서 임금을 사랑하는 도리가 아니다. 만약 서명하지 않는다면 그대들을 모두 죽여 젓을 담글 것이다"하였어.
참으로 협박치고는 끔찍하였지.
송청윤과 오충정은 엎드린 채 땀을 흘리면서 치를 떨었지.
그러나 이공승만은 왕의 뜻을 받들지 않고 거절하였어.
왕은 크게 화를내며 견책하고 그를 내쫓았어.
이 소식을 접한 지문하성 신숙, 간의 김양·류공재, 중서사인 홍원척, 기거사인 김우번, 우정언 허세수가 소를 올렸지.
"정함의 선조는 성조(태조)께서 개국하실 때에 명을 거역하고 복종하지 않아 노예에 충당시키고 종류를 구별지어 조정의 반열에 서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제 정함을 현달한 직위에 임명하시어 태조의 공신의 후예로 하여금 도리어 명을 거역한 종류에게 하인의 부림을 받게하시니 이는 태조께서 법을 세워 후세에 전수하신 뜻에 어긋납니다. 청하옵건대 정함의 벼슬을 삭제하시고, 정함과 더불어 서로 결탁하여 한 당을 이룬 자도 또한 서인으로 계급을 낮추소서."
소에는 정함이 노비인데 국정에 참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정함의 벼슬 뿐만아니라 그와 결탁한 자들을 모두 내치라는 내용이었지.
왕은 크게 화가나 그 소를 돌려보냈어.
세수는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고 벼슬을 버리고 갔어.
왕은 대간을 불러 정함의 고신에 서명하라 윽박지르니 모두 겁이나 왕의 뜻에 따랐으나 단 한사람 이공승만은 왕에게 순종하지 않았단다.
왕은 이공승을 불러 말하였어
"너는 일찍이 간관으로 있을 때에 이미 정함의 고신에 서명한 바 있다. 이제 와서 서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이공승이 단호하게 말하였어.
"신은 지난날의 잘못을 깨달았기에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하였지.
왕은 화가나서 이공승은 집으로 돌아가라 명령했지.
그러자 가을 7월 신숙은 홀로 소를 올려 정함의 벼슬삭제를 왕에게 청한거야.
왕은 홀로 소를 올린 신숙을 불러 물었어.
"예전부터 대신이 단독으로 간하는 일은 없었다" 신숙이 말하였어 "태조께서 창업하신이래 환관이 조관에 임명된 적은 없습니다. 주상 때에 이르러 비로소 이런일이 있으니 신은 항상 번민하여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지금 감히 와서 청하는 바이옵니다. 신의 말이 그르다면 죽음을 주시옵고 신이 옳다면 원컨대 윤허를 내리소서" 하였어.
왕은 이로서 정함의 벼슬을 삭제하고 지방에 포고를 내렸지.
그리고 신숙을 수사공 상서우복야로 좌천시켰으니 정함의 벼슬삭제를 청했기 때문에 내린 명이었단다.
정함의 집을 경명궁으로 삼겠다는 명이었지.
정함의 집은 대궐에서 동남쪽으로 30보 떨어진 곳에 있었단다.
규모를 보면 크고 작은 행랑의 칸수가 무려 2백여칸에 이르고 누각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으며 장식들이 너무 찬란하여 눈이 부실 정도였단다.
규모나 화려함으로 보면 궁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지.
당시 음양가들은 이 터를 두고 개가 머리를 들고 주인을 짓는 형상이니 임금이 임어하는 것은 좋치못하다고 했지.
그러나 왕은 개의치 않았단다.
그리고 그 다음해 6월 왕은 우승선 지어사대사 이공승, 중승 송청윤, 시어사 오충정 등을 불러 말하였어.
"정함은 과인이 포대기에 쌓여 있을 시절부터 정성껏 보호하여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에 권지각문지후를 제수하여 그 공로를 갚으려 했더니 이미 3년이 지나도록 경들이 고신에 서명하지 않으니 이는 실로 신하로서 임금을 사랑하는 도리가 아니다. 만약 서명하지 않는다면 그대들을 모두 죽여 젓을 담글 것이다"하였어.
참으로 협박치고는 끔찍하였지.
송청윤과 오충정은 엎드린 채 땀을 흘리면서 치를 떨었지.
그러나 이공승만은 왕의 뜻을 받들지 않고 거절하였어.
왕은 크게 화를내며 견책하고 그를 내쫓았어.
이 소식을 접한 지문하성 신숙, 간의 김양·류공재, 중서사인 홍원척, 기거사인 김우번, 우정언 허세수가 소를 올렸지.
"정함의 선조는 성조(태조)께서 개국하실 때에 명을 거역하고 복종하지 않아 노예에 충당시키고 종류를 구별지어 조정의 반열에 서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제 정함을 현달한 직위에 임명하시어 태조의 공신의 후예로 하여금 도리어 명을 거역한 종류에게 하인의 부림을 받게하시니 이는 태조께서 법을 세워 후세에 전수하신 뜻에 어긋납니다. 청하옵건대 정함의 벼슬을 삭제하시고, 정함과 더불어 서로 결탁하여 한 당을 이룬 자도 또한 서인으로 계급을 낮추소서."
소에는 정함이 노비인데 국정에 참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정함의 벼슬 뿐만아니라 그와 결탁한 자들을 모두 내치라는 내용이었지.
왕은 크게 화가나 그 소를 돌려보냈어.
세수는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고 벼슬을 버리고 갔어.
왕은 대간을 불러 정함의 고신에 서명하라 윽박지르니 모두 겁이나 왕의 뜻에 따랐으나 단 한사람 이공승만은 왕에게 순종하지 않았단다.
왕은 이공승을 불러 말하였어
"너는 일찍이 간관으로 있을 때에 이미 정함의 고신에 서명한 바 있다. 이제 와서 서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이공승이 단호하게 말하였어.
"신은 지난날의 잘못을 깨달았기에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하였지.
왕은 화가나서 이공승은 집으로 돌아가라 명령했지.
그러자 가을 7월 신숙은 홀로 소를 올려 정함의 벼슬삭제를 왕에게 청한거야.
왕은 홀로 소를 올린 신숙을 불러 물었어.
"예전부터 대신이 단독으로 간하는 일은 없었다" 신숙이 말하였어 "태조께서 창업하신이래 환관이 조관에 임명된 적은 없습니다. 주상 때에 이르러 비로소 이런일이 있으니 신은 항상 번민하여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지금 감히 와서 청하는 바이옵니다. 신의 말이 그르다면 죽음을 주시옵고 신이 옳다면 원컨대 윤허를 내리소서" 하였어.
왕은 이로서 정함의 벼슬을 삭제하고 지방에 포고를 내렸지.
그리고 신숙을 수사공 상서우복야로 좌천시켰으니 정함의 벼슬삭제를 청했기 때문에 내린 명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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