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림칠현 - 산도 ]
황급히 궁을 빠져나온 산도는 어두운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언덕에 올라 새벽안개에 휩싸인 궁을 바라보는 산도의 마음은 그제야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산도는 서서히 고향을 향해 발길을 돌리며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어렵사리 입문한 관직의 길이었다.
한직도 아닌 앞날이 보장된 자리였다.
그런 자리를 박차고 나왔기에 아쉬움이 남을법하지만 산도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통한 그였다.
비록 집안은 한미하고 아버지를 일찍 여윈 까닭에 가난하였지만 꿈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35살의 조예가 죽자 어린 8살의 조방이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조예의 유언에 따라 황제를 보필하는 임무를 맡은 조씨 황실의 종친인 조상과 3대를 보좌한 원로대신 사마의 였다.
이때부터 조씨와 사마씨 집안의 권력다툼이 시작되었다.
서로의 권력을 키우기 위해 조씨와 사마씨는 널리 인재를 모으는 중이었다.
사실 사마의는 산도에게는 내종고모부였다.
맘만 먹으면 관직의 길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노자와 장자를 좋아한 산도는 관직의 길이 아닌 고향에 은거한 채 자신을 숨기고 살아갔다.
무위자연 하는 삶이 좋기도 했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국으로 조상 아니면 사마의 라는 줄서기는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 앞에서 차라리 은거하면서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조상은 근본적으로 사마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직위에서는 조상이 사마의보다 조금 높은 위치였지만 경험으로 보자면 사마의가 월등했으므로 중대한 정책을 결정할 때에는 사마의의 의견을 구했던 조상이었다.
그러나 귀가 얇은 조상은 수하인 정밀(丁謐)이 얄팍한 의견을 내자 그 의견에 혹하였다.
“사마의의 공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데 그 직위는 태위에 불과하며 미천한 저는 조정 대신의 우두머리에 있으니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조상은 이렇게 아뢰어야 했다.
그러나 수하인 정밀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마의를 대사마나 태부로 임명해 주소서”라고 아뢸뿐이었다.
실상 대사마는 대장군보다 높은 직위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전임 대사마들이 임기 중에 죽어 불길하다는 여론에 의해 태부로 임명되었다.
태부라는 관직은 대신들 중에서 최고의 관직이긴 했지만 명목상 관직으로 실질적인 권력이 없는 직위였다.
사마의의 실권을 약화시키려는 이 의도를 사마의가 모를리 없었지만 상대가 자기를 존중하는 척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시 동호가 변방을 침략하자 사마의는 즉시 병사들을 데리고 출정하여 승리하였고 그의 명성은 한층 더 올라갔다.
조상은 자기의 권력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촉을 정벌하기로 하였다.
무모하고 경솔한 행동이었지만 조상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조상은 참패했고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만 갔다.
조정의 실세였던 조상은 조정의 중요한 위치에 자신의 심복을 앉히면서 그의 세력을 넓혀갔다.
결국 사마의의 세력은 위축되기 시작하였고 누가보아도 조상과 사마의의 권력대결은 조상의 압승으로 보였다.
그의 나이 마흔, 산도는 때가 되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관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산도는 비록 높은 직책은 아니었지만 고향 회현의 잇점을 살려 주부(主簿), 군 인사 및 임면을 관리하는 공조(功曺)를 거쳐 상계연(上計掾)이 되었다.
이 직책은 매년 연말이 되면 수도로 들어가 지역의 재정과 간부들의 업적을 보고할 자격이 있는 지역의 실권이 있는 직책이었다.
그리고 효렴으로 선발되어 곧장 낙양의 관리가 되었다.
지방의 아전에서 수도의 속관으로 승승장구한 산도는 조정의 요직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지방의 아전일 때는 나라와 조정에 충성을 다하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그러나 낙양의 관리가 된 산도는 조상집단에 충성을 다해야 했다.
산도가 낙양의 관리로 부임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내종고모이자 사마의의 아내인 장춘화가 세상을 떠났다.
산도에게 있어 이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사마의는 아내의 죽음으로 병이 들었다는 핑계로 국정 참여를 거부했다.
조상은 조예의 황후였던 곽 태후를 조방 곁에서 떼어 어린 황제가 의지할 곳을 없애버렸고 황궁의 궁군을 장악해 버렸다.
산도는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후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신념을 굳게 가졌다.
머지않아 조씨와 사마씨의 권력을 향한 혈투가 벌어지리라 예상하였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참고문헌 : 야만의 시대, 지식인의 길 도서출판 유유 지은이:유창 옮긴이:이영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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