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림칠현 (완적)-3편 ]
거실 벽의 구멍을 통해 쪼그려 앉아 한쪽 눈을 감고 벽 안쪽을 살펴보던 그녀는 완적이 눈에 들어오자 화들짝 놀랐다.
완적에 대한 명성을 그녀도 익히 알고 있었다.
완씨 집안은 명문가문은 아니었다.
완적의 아버지 완우는 대학자 채옹의 제자이면서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회원이었다.
건안칠자는 조조 부자를 중심으로 중국 후한 말기에 만들어진 문학 동호회였다.
조조와 완우는 채옹의 제자이자 같은 동호회에 있어 친분이 두터웠다.
이러한 관계로 인해 채옹의 딸 채염이 흉노로 시집가 갖은 고초를 겪는 것을 스승을 통해 안 조조는 북방을 통일한 후 채염을 구해왔고 혼사를 주선하기도 하였다.
건안칠자의 대부분의 회원들은 조조의 부하가 되어 조조를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도가사상을 숭배한 완우는 조조가 관직을 권유하자 산속 깊숙이 숨어버렸다.
재주를 아깝게 여긴 조조는 산에 불을 질렀고 하는 수 없이 완우는 군사를 주관하는 참모장으로 조조를 위해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완우는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한번은 조조가 막 외출을 하면서 완우에게 서량의 군벌 한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도록 명하였다.
완우는 편지도 써야하고 말을 타고 조조도 따라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완우는 급하게 붓을 휘갈겨 조조에게 편지를 전하고 말에 올랐다.
조조는 급하게 서두른 글이라 분명히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붓을 들어 수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고칠 부분이 없이 완벽했다.
그러나 재주 많은 완우는 불행히도 3세 된 아들 완적을 두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완적은 아버지 완우 덕분에 귀공자로 자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조와 조비 부자의 친분관계로 정치적 입지도 세울 수 있어 맘만 먹으면 공을 세워 출세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총명한 그는 조씨와 사마씨의 격렬한 권력투쟁을 보면서 현실정치에 실망하고 무위자연의 도를 추구하게 되었다.
완적은 아버지를 닮은 부분이 많았다.
아버지 완우가 문학가였다면 완적은 중국 문학사에서 시인이자 문학가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음률과 음악적 재질도 정통했으며 거문고와 창으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특히 사상가로서 노장철학에 대해서는 매우 깊은 조예가 있었다.
완적의 철학적 사고는 세속의 억압에 얽매이지 않게 하였고 즐거움과 분노를 쉽게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 됨됨이를 가지게 하였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완적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다.
몇 달 동안 책만 보기도 하고 며칠씩 집을 비우고 산수를 따라 떠돌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사람이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완적이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숙부를 따라 동군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연주자사인 왕창이 완적이 소문난 인재라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를 원했다.
완적은 왕창을 만나자 어쩐 일인지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왕창은 당황해하며 불쾌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완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까닭은 왕창이라는 자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왕창은 1년 후 사마씨 집단의 심복이 되었다.
조씨 가문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완적에게 득일 수도 있지만 조씨 가문의 포섭과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조씨 정권의 원로이자 충신이었던 장제가 태위에 올라 완적을 불러들이려 했다.
그러나 완적은 예를 갖춰 자신을 중용하려는 은혜는 감사합니다만 자신은 무능한데다가 병약해서 감당할 수 없으니 고향에 내려가 농사나 짓겠다고 완곡하게 거절하는 서신을 올렸다.
완적의 글을 본 장제는 일반 문인들처럼 한번 사양했다가 몇 번 더 청하면 못 이기는 척 자신에게 오리라 생각하고 부하를 완적에게 보냈으나 이미 시골로 내려간 뒤였다.
이를 보고받은 장제는 그를 추천한 부하 왕묵에게 대노했고 왕묵은 완적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의 체면을 세워 달라 간청했다.
완적은 어쩔 수 없이 관직에 올랐지만 얼마안가 병을 핑계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정의 상서랑의 부름을 받자 완적은 자신을 추천한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 다시 조정에 나아가지만 며칠 후 다시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산도가 관직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부인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던 시기 당시 권력을 독차지 하고 있던 조상은 직접 완적에게 군사참모가 되어 달라 요청을 하였다.
이 좋은 기회도 완적은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그리고 일년의 시간이 흐른 후 조상 무리는 사마의에 의해 몰살당하였다.
완적의 선견지명과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한씨는 자신 앞에 있는 이 대단한 사내 완적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밤을 세우게 만들었던 것이다.
출처 : 야만의 시대, 지식인의 길 도서출판 유유 류창지음, 이영구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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