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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의종 - 점쟁이 영의 1157년 봄 정월 초하루 바람이 건방으로부터 불어왔다. 왕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태사를 쳐다보았다. "나라에 우환이 있을 징조입니다"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점쟁이 내시 영의가 말하였다. "재앙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해야합니다." 영의의 말을 들은 왕은 영통사·경천사 등 5개 사찰에 명하여 이달부터 연말까지 불사를 베풀어 기도하라 명했다. 영의는 누구인가. 그의 아버지는 사천감. 영상이었다. 예전에 섬으로 귀양을 갔는데 섬안에는 반역을 꾀했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후예인 여자를 얻어 영의를 낳으니 그 모습이 괴이하고 성품은 간사하고 교활하였다. 그는 국운의 성쇠와 왕의 수명은 기도의 부지런함과 태만함. 순행의 적고 많음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왕은 이에 미혹되어 .. 더보기
고려 의종 - 김존중의 죽음 1156년 봄 김존중의 죽음. 1170년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킨 요인중의 하나인 총신정치의 핵심인물 중의 한명이 죽은것이다. 그는 시로 이름이 높았었다. 대과에 당당이 합격한 인물이다. 정함처럼 본래 천예출신도 아니고 의종이 잠저에 있을 때 친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와 함께 총신정치의 핵심인물이 된 것이다. 그는 인종 때 태자시학의 인연으로 의종 때 우정언을 거쳐 정삼품인 승선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정삼품인 고위직인 승선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정함의 극력 추천이 있어 그 후 그 세력으로 말미암아 이익을 탐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정세는 강성한 개성세력으로 왕권이 위축되어 있었다. 또한 서경세력은 끊임없는 모역음모로 왕의 신변을 위협을 위협하고 있었다. 누구도 믿지못하는 상황 속에서 믿고 의지하던 정습명이 의종.. 더보기
이승휴 - 병과시 이승휴가 과거시험에 급제하고도 몽골과의 전쟁과 홀어머님을 봉양하기 위해 삼척에 있을 때 벼슬로 나아가 이상을 실현하고픈 욕구와 눈앞에 펼쳐진 현실 속에서 마음을 다 잡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병과시를 짓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자신의 마음과 치열한 싸움을 해야 했다. 날마다 사립문 나와 시냇물 근원을 거닐고 시냇가 순록들도 점점 친숙해져 한무리 되었네. 시냇물과 더불어 희롱하며 오래 앉아 있으니 푸른 이끼 따뜻하고 때때로 마을 늙은이 찾아와 나를 논평하며 웃으며 말하네. 그대 거취 보고 나는 매우 성의있는 고언 드리고 싶다오 그대는 소년 때부터 운몽택을 가슴에 삼키려 했소. 나이 다하고도 항상 진중하고 박 잎 삶아도 펄펄 나부끼나니 시험장에서는 호랑이 잡기를 기약했고 학문 바다에서는 고래같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