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의종 - 고려 인사청문회 고려와 조선에도 현대와 같은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조선보다는 고려가 더 엄격했다. 1157년 11월 의종은 심각한 얼굴로 좌승선 직문하성 이원응, 우승선 좌간의대부 이공승을 불러 문하성에 전지를 내려 정함의 고신에 서명 할것을 독촉하라 명한다. 고신이 뭔데 왕이 이리 심각하게 독촉하라 명한것일까? 고신은 비록 국왕이 관리의 임명을 재가하더라도 대간이 동의해 고신에 서명을 해야만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제도이다. 이것을 서경제도로 하는데 지금의 인사청문회와 비슷하다. 서경은 어사대와 중서문하성 3품관직인 낭사가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대관과 간관을 통털어 말하는 것으로 대간이라 했다. 이들은 관리를 감찰하고, 임금에게 간언을 서슴치 않았다. 대간의 권리로는 간쟁, 봉박, 서경이 있었다. 간쟁은 왕의 잘못을.. 더보기 고려 의종 - 수덕궁 1157년 여름 4월 드디어 대궐 동쪽에 별궁이 준공되었다. 백성들의 고통으로 준공된 별궁을 살펴보자. 궁에 앞서 사택이 궁궐로 승격된 경우도 있었다. 시중 왕충의 집을 안창궁으로, 참정 김정순의 집을 정화궁으로, 평장사 유필의 집을 연창궁으로, 추밀부사 김거공의 집을 서풍궁으로 삼았다. 대궐 동쪽에 지은 별궁의 이름은 수덕궁. 의종이 지은 최초의 별궁이다. 수덕궁의 정전은 천령전이다. 민가 50여 호를 헐고 그 자리에 대평정자를 지었다. 현판은 태자가 지었고 단뒤와 주위에는 화려하고 이름있는 꽃으로 장식하였으며 신기한 과실나무를 심었다. 진기하고 화려한 물건들로 좌우를 장식하였다. 정자 남쪽으로는 못을 파서 호수위에 관란정을 지었다. 북쪽으로는 청자를 덮어쓰고 있는 양이정이 자리잡았으며 남쪽으로는 대나.. 더보기 고려 의종 - 대령후 왕경 고려 인종에게는 4명의 왕비가 있었다. 이자겸의 딸이자 인종의 이모인 2명의 폐비가 있고 두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그 중 공예왕후 임씨에게서 5남4녀를 얻었다. 공예왕후가 가장 아끼던 자식이 바로 대령후 왕경이다. 인종과 공예왕후사이에서 출생한 둘째아들. 공예왕후는 내심 그를 왕태자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인종의 마음은 그의 형 의종에게 가 있었다. 이로인해 의종에게 본의아니게 미운털이 박혀 결국 역모로 몰려 귀양살이를 하다가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정함은 대관들과 대립하고 있었는데 대관들을 척결하는 방책을 모색하던 중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의종 즉위 직후 대령후로 책봉된 왕경이었다. 먹이감을 발견한 정함은 산원 정개수를 포섭해 거짓으로 역모를 고변하도록 했다. 정개수는 대성과 이빈등이 왕을 원망하여..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8 ··· 89 다음